나바위성당

성당연혁

1800년대

1899

04.04

강경포 사건 발생. 불뫼 공소 설립{베르모렐 신부 담당, 현 관산공소– 초대 회장 송병수(안드레아)}

 

1897

05.08

본당 설정. 초대주임: 장약슬(요셉, 베르모렐)신부 사목활동 시작

 

06 ~ 08.28

베르모렐 신부, 강경에 도착했으나 아직 교우도 없고 신부 거처할 집도 없어 본당 후보지를 정할 때까지 당분간 안대동 공소집에 거주(1897.8.28.)

09.

베르모렐 신부 나바위에 정착
– 동학난으로 멸망한 김여산의 12칸 와가를 800냥에 구입하여 성당으로 개조.
– 또한 경기도 서순환 판서 소유의 화산과 그 산에 딸린 토지 70두락, 밭 수백 두락, 양동대지 전부와 산록 3곳, 노전 1곳을 4,000원에 매입
– 1897-1898년 교세: 은진(공소 5곳,311명), 석성(공소 1곳,47명), 여산(공소 4곳, 185명), 임피(공소 3곳,120명), 함열(공소 3곳, 191명), 익산(공소 3곳, 35명), 용안(공소 5곳, 360명)에 공소 24곳, 신자 1,376명(1898년 영세자 포함 1,514명)

 

1895

신덕공소 설립

 

1882

나바위 공소 설립(리우빌 신부 담당)

1880

1880. 전후

경기도 신창 사람 강인수(바오로), 경기도 장단 사람 서상준(안드레아), 은진 여술 사람 유원록(야고보)이 화산에 이사와 교우촌을 이루고 전교 활동

 

1845

10.12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김대건 신부가 강경 황산포구 나바위에 상륙. 페레올 주교는 구순오 교우집(강경읍 홍교동 101번지)에 은거하고, 다블뤼 신부는 강경에서 90리 떨어진 공동이라는 교우촌에서 한글 공부, 김대건 신부는 서울로 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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